
석모도와 보문사, 좋은 사람과 천천히 걷고 싶은 하루
“우리, 바람이나 쐬고 올까?”
거창한 여행 계획보다 이런 말 한마디에 더 마음이 움직이는 날이 있습니다. 물 한 병 챙기고, 편한 신발을 신고, 가는 길에 먹을 간식도 조금 넣어봅니다. 어디를 얼마나 많이 둘러볼지는 나중 일입니다. 오늘은 그저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보고 싶은 날이니까요.
그런 날 떠올리기 좋은 곳이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 그리고 섬의 낙가산 자락에 자리한 보문사입니다. 바다를 만나고, 산자락의 사찰에서 걸음을 늦출 수 있는 곳이지요.
“섬에 가자”는 말이 주는 설렘
석모도는 석모대교를 건너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리를 지나 찾아가는 섬이지만, ‘섬으로 여행 간다’는 말에는 여전히 작은 설렘이 담겨 있습니다.
여행길에서는 평소에 미뤄두었던 말도 조금씩 꺼내게 됩니다.
“요즘 많이 피곤했지?”
“그러게. 이렇게 나오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
꼭 대단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창밖을 함께 바라보고,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듣고, 가져온 간식을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여행은 이런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낯선 곳에서 특별한 일을 만드는 하루보다, 익숙한 사람과 조금 더 다정해지는 하루 말입니다.
보문사로 향하는 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보문사는 석모도의 대표적인 사찰입니다. 한국관광공사 안내에 따르면 신라 시대인 635년 회정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랜 세월 이어진 사찰인 만큼, 풍경과 함께 그곳에 쌓인 이야기도 살펴볼 만합니다.
이곳에서는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기보다 걷는 속도를 조금 늦춰보면 좋겠습니다.
함께 간 사람의 걸음에 맞춰 걷고, 숨이 차면 쉬어가고,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는 잠깐 멈추는 겁니다.
“천천히 가자. 오늘 우리 급한 일 없잖아.”
여행 중에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마 이런 말일 것입니다. 평소에는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쉬는 날조차 시계를 들여다보며 움직였으니까요.
눈썹바위 아래에서 떠오르는 얼굴들
보문사에서 잘 알려진 곳은 눈썹바위 아래의 마애관음좌상입니다. 이곳에서는 서해 풍경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불상 앞에 서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을 빌고, 누군가는 자녀의 앞날을 떠올릴 것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얼굴이 생각날 수도 있겠지요.
바라는 것을 하나씩 적어보면 많을 것 같은데, 막상 마음을 모으면 몇 마디로 줄어듭니다.
“우리 가족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애쓰는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서로 의지하며 지내게 해주세요.”
살아갈수록 소원은 소박해지면서도 간절해집니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반가운 사람과 오래 만나는 일. 평범해서 지나쳤던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꼭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잠시 조용히 서서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어부의 그물에서 시작된 정겨운 이야기
보문사에는 바다와 이어진 전설도 전해집니다.
강화군의 소개에 따르면, 고씨 성을 가진 어부가 바다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건져 올려 보문사 석굴에 모셨다고 합니다. 이는 사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섬의 사찰에 어부와 그물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점이 정겹습니다. 바다에서 하루의 살림을 꾸리던 사람들의 생활과, 마음을 의지하던 사찰이 한 이야기 안에서 만나는 듯합니다.
아이와 함께라면 이렇게 말을 건네봐도 좋겠습니다.
“옛날에 이 섬의 어부가 그물을 올렸는데, 물고기 대신 불상이 올라왔다는 이야기가 있대.”
안내문을 읽고 지나가는 것보다 이야기를 나누며 둘러보면, 여행의 기억도 한층 오래 남을 것입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따뜻한 밥 한 끼
사찰을 둘러보고 나면 따뜻한 밥이 떠오릅니다. 여행지에서 먹는 한 끼는 꼭 이름난 음식이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아하는 반찬을 상대방 앞으로 밀어주고, 물이 비었으면 따라주고, “많이 걸었으니 든든하게 먹어” 하고 말을 건네는 식탁이면 충분하지요.
“오늘 나오길 잘했네.”
그 말이 나오면 그날 여행은 이미 잘된 셈입니다. 많이 보았기 때문도, 멋진 사진을 남겼기 때문도 아닙니다. 같이 걷고 밥을 먹는 동안 서로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기 때문입니다.
석모도에 두고 오고 싶은 것, 가져오고 싶은 것
석모도와 보문사를 찾는 날에는 마음속으로 작은 약속을 해보면 어떨까요.
쌓아둔 조급함은 조금 내려놓고, 고마운 마음은 한 줌 더 챙겨오기.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줄이고, 함께 온 사람의 얼굴은 한 번 더 바라보기.
돌아오는 길에 예쁜 노을까지 만난다면 반갑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기억할 하루가 생겼으니까요.
이번 쉬는 날에는 소중한 사람에게 먼저 말해보세요.
“우리 석모도 갈까? 보문사도 천천히 둘러보고, 따뜻한 밥도 먹고 오자.”
그 한마디가 오래 기억할 다정한 하루의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 보문사 마애불로 향하는 길에는 계단이 있으니 편한 신발을 준비하고, 동행인의 체력에 맞춰 쉬어가세요. 관람시간과 이용요금은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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